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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

<결말 스포일러> RALPH BREAKS THE INTERNET 주먹왕 랄프 2



주먹왕 랄프2를 봤다. 재밌었다. 감동적이다. 오래된 오락실 게임 다고쳐 펠릭스 <Fix-it Felix Jr.>의 악역 랄프가 주인공이다.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원제는 RALPH BREAKS THE INTERNET. 외국영화의 경우 원제와 국내 개봉명이 다를 때가 왕왕있다. 주먹왕 랄프2도 그런 사례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눈에 들어온 영문 제목 <RALPH BREAKS THE INTERNET>. 인터넷을 부수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국내 개봉 이름인 <인터넷 속으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두 제목은 단어 그 자체로도 의미가 다르며 관객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지니게 되는 감정에도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서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데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인터넷 속으로> 보다는 <인터넷을 부수다> 혹은 <인터넷을 고장내다> 라는 제목이 더 정확하다. 번역을 떠나 영화의 흐름 상으로도 그렇다.


주인공 랄프의 단짝인 공주 바넬로피가 활약하는 레이싱 게임 <슈가러시>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행을 떠나 겪는 모험들이 이야기의 주된 뼈대다. 오락실, 레이싱 게임 슬로터 레이스, 다크웹,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아마존 등 상상력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여러 갈등이 일어나고 주인공들은 고민한다. 둘의 관계 그리고 각자의 미래에 대해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인터넷을 부순다> 라는 사실이 미리 알려졌다면 관객은 바넬로피나 랄프가 어떤 식으로 인터넷 세상을 파괴할지 의문을 가진 채, 즉 또 하나의 긴장감을 가진 채 감상했을 것이다. 반면 <인터넷 속으로> 라는 제목을 본 관객이라면 인터넷 세상으로 가는 이야기로구나 정도의 비교적 평온한 마음으로 영화를 접할 것이다. 영어 원제를 보며 더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결말에서 디즈니의 모든 공주가 랄프를 구해낸다. 늘 왕자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혹은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 새로운 운명을 맞이했던 공주들이 이번엔 랄프를 구했다. 디즈니의 공주들은 고전적인 여성성의 대명사였다. 강한 모습 모습을 보여준 인물, 상황, 자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 그들의 외형은 연약했으며 큰 눈에 작은 얼굴을 한 채였다. 당차고 씩씩한 성격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성의, 주로 왕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터넷을 부수다>에 '우정출연'하는 공주들은 작은 비중이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그리고 일종의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랄프를 구한다. 디즈니는 과거와 미래 중 미래를 택한 듯 하다. 


바넬로피는 자신의 미래를 <슈가러시>가 아닌 인터넷 속의 새로운 게임 <슬로터 레이스>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새 삶을 선택하려 하지만 한편으로 바넬로피의 마음엔 자신의 삶에서 랄프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다. 랄프는 바넬로피에게 집착하며 원래 그들이 행복했고 즐거웠던 세계로 함께 돌아가기를 바란다. 인터넷 세상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로 빗대어진 랄프의 사랑은 결코 성숙한 사랑이 아니다. 성숙한 사랑은 나의 욕망을 넘어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랄프와 바넬로피의 물리적 이별과 랄프의 내면적 성장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놓아주라고 말한다. 우리가 애써 부여잡고 있음으로써 망치고 있는 것들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택한 바넬로피처럼 어느덧 100년이 되어가는 디즈니도 새로운 길을 택하고 있다. 드레스 대신 트레이닝 복을 입은 공주들, 머나먼 나라의 왕자님이 아닌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랄프, 디즈니의 새로운 공주이지만 노래를 잘 못부르며 가상현실 출신인 바넬로피와 같은 등장인물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에 나오던 그 디즈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끔은 다시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싶지만 바넬로피는 언젠가 <슬로터 레이스>로 향할 운명이다. <토이 스토리> 부터였나. 이별을 노래하는 디즈니. 진하게 색칠해도 헤어짐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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