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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

<강스포일러> 걸캅스

SpaceButterfly l MARCH 27, 2019





<걸캅스> 소녀 형사들. 여자 형사들. 주인공은 팀의 막내인 현직 형사 그리고 민원봉사실에서 일하는 전직 형사. 라미란은 이성경의 오빠와 결혼한 사이다. 그리고 한집에 살고 있다. 놀라운 설정. 영화는 개연성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꿋꿋이" 할 말을 이어나가는 한국형 코미디다. 라미란의 동료이자 국정원에서 댓글 공작원으로 일하다가 환멸을 느끼고 민원봉사실에서 일하는 해커 양장미라는 인물 설정에서 국산 코미디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본인의 나이대에 맞는 설정, 말투를 부여받아서 인지 몰라도 수영의 연기는 영화에 잘 어우러졌다. 다른 작품의 역할도 기대가 된다. 아쉬운 것은 라미란이 맡은 박미영 역할이었다. 연기력이 부족했다기보다 배우의 역량을 발휘할 만한 장면을 주지 않았다. 영화의 주제와 핵심을 전달하는 감정연기는 주로 이성경이 맡았다. 피해자의 아픔과 사회정의보다 성과를 우선하는 경찰 권력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성범죄와 기득권에 대항하는 젊은 형사 조지혜를 통해 영화는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경찰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피해자보다 우선하는 가치 혹은 그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이성경이 지금보다 더 강한 육체로 등장했다면, 가령 근육량을 10kg 정도 늘린 상태로 등장했다면 몰입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늘 쓰이지만 잘 먹히는 홍보인 '모 배우의 대변신' 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20대, 30대 배우들 중에서 시각적으로도 강한 여성 캐릭터가 나왔으면 좋겠다. 40, 50대 여성 혹은 아주머니를 연상케 하는 라미란의 박미영 역은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명의 남성을 혼자 쓰러트리거나 남편을 수시로 구박하는 장면들에서 힘이 느껴진다. 다만 영화 대사에서 레슬링을 배운 것으로 밝혀진 것처럼, 보다 많은 레슬링 기술을 보여줬다면 훨씬 생동감 있는 액션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클럽은 이 영화의 핵심인 <성범죄>의 현장이자 결말로 이어지는 중요한 장면으로 작동한다. 이야기 흐름상으로도 가장 긴박함이 모여있는 순간이라 볼 수 있다. 클럽 입구에서 누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라미란은 입장하지 못하고 이성경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성경은 가해자 남성집단을 검거하려다가 역으로 공격을 받고 결국 납치까지 당하고 만다. 그리고 라미란은 그들을 추격하게 된다. 만약에 이 클럽에서 이성경과 라미란이 같이 들어 가거나, 라미란만 클럽으로 들어가게 됐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봤다. 중년의 여성이 젊은 층을 상대로 하는 클럽에 입장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미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웃음을 활용해 현실을 뛰어넘지 않았던가.


여성은 극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이자 선이며, 반대로 남성은 대부분 악하거나 부족하거나 부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지금의 한국 사회와 영화시장을 고려해 봤을 때,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영화시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남성 배우 그리고 남성 역할이 지배적이다. 극의 세계관은 말할 것도 없이 기존의 상징체계와 사회질서를 그대로 답습한다. 이와 같은 여러 제반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걸캅스>의 제작진들이 무엇을 의도했건 여성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 한 갈래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걸캅스>의 작품성만을 두고 본다면, 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할 만한 엄청난 명작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편, 누군가에게 망작인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명작, 혹은 인생작일 수도 있다.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을 볼 수 있도록, 그 밤하늘 그 자리로 인도해주는 별 역시 소중하다.


하정우의 등장은 영화에 더 오래 나와주기를 바랄 만큼 적절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치 건물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대사 역시 유려하게 잘 소화했다. 영화 내내 엎드려 있던 성동일 역시 벌떡 일어나 팀을 출동시키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새로운 배우들의 발견과 성장만큼이나 적시 적소에 나타나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대가들의 깜짝 등장도 반가웠다. 


클럽과 유흥업소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어느 시점, 한 순간의 악몽으로 남았던 사건들이 음란물 유포와 공유라는 새로운 범죄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를 소재로 한 <걸캅스>가 5월 9일 개봉했다. 다소 억지스럽고 어설프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또 그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부디 가해자들과 관련 공무원에게 이 외침이 전달되길 바란다.  





감독 각본 정다원 제작 필름 모멘텀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음악 이재학 편집 김형주 촬영 이성재 


참조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