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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허스토리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잘 기억이 안난다. 주인공 이름, 배우, 이야기가 어떤 흐름이었는지. 기억력 향상에 관련된 학습법들은 대부분 반복과 습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늘 가물가물한 머릿속은 흐르는 대로 살아온 궤적의 탓이려나. 일본군'위안부' 란 단어는 마구잡이로 덧칠한 수채화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여러 기억들의 틈바구니 속에 묻혀 있었다. [아이캔스피크]가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를 희망차게 이야기 했다면 [허스토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과 그 주인공들을 사무치게 재현한다. 위축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힘겹게 토로하는 법정 장면은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위대한 배우들은 기어이 진실을 담아내고야 만다. 표정. 대사. 몸짓으로. 빛 바랜 물감들이 들고 일어나 외치고 울부짖고 우뚝 선 채 과거의 망령들에게 외친다. "내 본래 모습으로 돌려줘"


[아이캔스피크]는 도덕시간에 보충자료로 쓰이게끔 무거운 주제를 적당히 재밌게 그러나 나름대로 충실하게 만든 영상 교과서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허스토리] 평범한 대사, 익숙한 흐름과 결말이 뒤따르는 영화겠거니 하며 큰 기대없이 본 영화다. [아이캔스피크]의 연출은 최대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쉽고 재밌게 만드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이야기 속에 소소한 웃음거리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담백하게 표현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기획이자 마케팅이라는 것을 358만명의 관객이 증명해주고 있다. 묘사방식에서는 [아이캔스피크]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귀향은 16.02.24에 개봉해 32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들은 '재미와 웃음' 뿐만 아니라 '불편함' 역시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허스토리]의 관객 수는 18.07.24 기준으로 30만명을 넘겼다. [아이캔스피크], [귀향]과 비교했을 때 10분의 1이다. 18.07.04에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는 누적 관객 530만을 기록 중이다. 만일 [허스토리]가 166만개의 좌석 수를 가져가고 [앤트맨과 와스프]가 5만석을 배정 받았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히스토리가 아닌 [허스토리]다. 제목처럼 영화는 그녀들의 인권이 어떻게 말살되어 왔으며 또 연대와 화합을 통해 얼마나 치열하게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약자, 거대한 폭력, 은폐, 모든 편견과 억압, 내면의 고통을 무릅쓰고 세상에 나서는 용기, 외면, 연대와 화합. 작은 승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환점에 있다. 편중된 목표로 수 십년을 달려온 결과 정계와 재계는 거대해진 반면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켜온 실질적 주인공이었던 시민사회 및 시민의식은 왜소하고 힘이 빠진 상태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IOT로 인해 도래할 혁명적인 산업 구조조정, 난민과 통일문제 등 십수 년간 몰아칠 중대한 선택들을 정부와 기업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허스토리]는 그래서 반가웠다. 우리가 온 길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아갈 길 그리고 그 정신적 토대까지 제시한다.


92년부터 6년간 지속된 관부재판. 인본적 감수성을 타고 났거나, 올바른 시민에게 부여된 공적인 삶에 대해서 학습할 기회가 있던 분들과 달리 최근에 들어서야 사회를 견인하는 정의와 진실 그리고 시민의 역할을 인지하게 됐다. 아쉽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입법, 행정, 사법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리인이다. 보통의 인간에게 '내'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자기'의 일인 것처럼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일에 내가 나설 수 있는 환경,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개혁이나 변화는 시민으로부터 나왔다. 의도치 않은 외부의 충격을 감내하는 것 역시 시민이 할 일이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넘어 시민참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긴 세월 [허스토리]를 살아왔던 국내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30명 미만이며 평균연령이 90세가 넘는다고 한다. [허퓨처]는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055-264-0930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통영거제시민모임 / 055-649-8150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 053-257-1431

나눔의집 / 031-768-0064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02-365-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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