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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상도동 밀스키친


상도동 한 복판, 다소 쌩뚱맞게 위치한 밀스키친. 우연히 들린 이 곳에서 마카롱을 샀다. 




맛있다. 특히 치즈 맛. 쫀득 쫀득 하다. 디저트는 자고로 강렬해야 한다. 앞서 먹은 모든 음식을 잊을 만큼. 강한 단 맛에 입 안과 정신이 얼얼해 지면 그 때, 식사는 끝난다. 




불을 밝히는 등. 등불. 나중에 먹는 음식. 후식. 차게 해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마카롱은. 장마다. 쁘라삐룬. 비의 신. PRAPIROON. 일기예보는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스스로 길을 찾아 가자. 운과 명은 그저 길일 뿐 그대로 밟아야 하는 율법이 아니다. 흰 벽과 마카롱이 썩 괜찮은 가게는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주택가 한 복판이 어울린다. 오랜 기다림이 긴 편지를 낳 듯 오랜 사유가 깊은 글을 만든다. 나는 맛을 추구하는 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면 다시 한 번 먹고 싶다. 장마가 길 수록 더욱 달아 지려나. 그리하여 앞선 생의 고통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과거를 모아 현재의 판단을 내린다. 역사는 지금을 위해 모아둔 조각들이며 미래 어느 시점의 나를 가늠하기 위한 수치다. 꼭 그러한 인간들이 있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나타나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대사를 읊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언제 만나도 기분이 언짢은. 그들 역시 자신의 삶에 충실할 뿐이겠지. 올바른 판단이 있는지 모른다. 그냥 간다. 한번도 봉골레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되도록이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면 꼭 먹어야 한다면, 먹겠다. 봉골레를 먹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 순간이 한 사람의 인생에 다시 없을 근사한 선물같은 순간이라면 먹겠다. 봉골레에 오이와 굴과 가지가 잔뜩 들어가 구역질이 터져 나와도 괜찮다. 괜찮다. 디저트가 있지 않은가. 마법같은. 마카롱이. 마법. 마카. 롱. 


별 말 없이 그저 내림만으로 충분히 제 소리를 들려주는 비처럼 묵묵히. 차분히. 추적추적. 비적비적. 하루가 하루를 삼킨다. 오늘이 역사를 더듬 더듬. 뻗은 손을 휘적거려 잡히는 대로 마셨다. 꿀꺽. 이 계획이 빈 틈없이 완벽하게 젖으면 성공이다. 이제 누구도 글을 쓸 수 없는 젖은 종이를 바탕으로 건배. 비가 내려서 좋다. 덕분에 잔이 금방 다시 차올랐다. 주술이 흘러 넘치는 잔은 오른 손에. 마카롱을 다 먹자 비가 그쳤다. 달다.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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