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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시네마 천국, 소우주, 벌레주의보


벌레만 나오는 영화입니다 조심하세요!


소우주. 작은 우주. <마이크로 코스모스>


어제 티스토리 일기를 쓰다가 문득 생각난 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좀 조사해봤다. 그저 좀 유명한 곤충 다큐멘터리 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발견해서 뿌듯했다. 예상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꽤 많이 붙는다. 우선 1996년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1회라니. 96년이 1회 였구나. 서병수 부산 시장의 다이빙벨 상영 취소 요구를 거부해 예산을 삭감당했던 그 영화제. 재밌구나. 재밌어. 역시 세상은 재밌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같은 해인 96년 칸 영화제에서 다큐 필름 최초로 기술상을 수상했다. 내용상으로 곤충들의 하루를 촬영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필름을 소모했다 하니 상을 줄만도 한 것 같다. 제작기간도 상당한데, 연구조사 15년 특수장비제작 2년 촬영 3년 무려 총 20년에 걸쳐 제작했다. 음. 20년일. 과장이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공을 많이 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곤충을 소재로 한 35 mm 필름 최초의 기록영화다.


이 화려한 뒷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바로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를 연기한 [자크 페렝]이 제작자 이자 나레이터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오, 토토라니. 토토. 말도 안돼. 시네마 파라다이소. [엔리오 모리꼬네]의 OST만 들어도 왠지 가슴이 아려오는 그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곤충 이야기를 찾다가 [자크 페렝]이라는 이름에 눈이 확 돌아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제법 지속적으로 자연 다큐멘터리 작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마이크로 코스모스, Microcosmos: Le peuple de l'herbe,  1996>를 필두로 철새의 여정을 그린 <위대한 비상, The Travelling Birds, Le Peuple Migrateur, 001> 5000미터 해저의 이야기를 그린 <딥 블루, Deep Blue, 2005> 디즈니와 함께 바다를 누빈 <오션스, Oceans, 2009> 드디어 지상의 동물들을 찍은 듯 보이나 정보가 많이 없는 <시즌스, Seasons, Les saisons, 2015>에 이르기까지 [자크 페렝]은 꽤나 끈질기게 나레이터, 연출가, 제작가로써 자연에 천착하는 발자취를 보여준다. 

 

위 작품들이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삼은 다큐라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은 <딥 블루, Deep Blue, 2005>를 제외하고 모두 작곡가 [브뤼노 끌레]의 손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의 최근작으로는 <코렐라인: 비밀의 문, 2009><뮨: 달의 요정> 등이 있고 <코러스, 2004>의 OST 앨범은 2005년 기준, 1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브뤼노 끌레]가 없는 <딥 블루>의 경우에도 아카데미 수상작 [간디][위험한 관계][피셔킹]에 참여한 [조지 펜튼]이 참여했고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영화 스코어를 연주했다. 영상매체를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반은 화면, 반은 음악이라고 한다. 감동적이거나 뛰어난 작품들을 보면 멋진 배경음악, 효과음, 대사 등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다. 더구나 자연 다큐의 경우는 준비된 이야기를 풀어 낸다기 보다는 동물들의 일상에 의미나 줄거리를 '부여'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 분위기 조성과 몰입을 위한 음악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음악가들을 섭외한 것은 아닐런지. 라고 생각해봤다. 


곤충으로부터 출발해 하늘과 바다를 거쳐 다시 육지로 돌아온 [자크 페렝]의 자연 다큐 여정을 간략하게 되짚어 봤다. 자연의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 그리고 음악들 과연 어떤 방식으로 풀어갔을지 정말 기대 된다. 티스토리를 만들며 트렌드에 맞는 소재로 글을 써보자 다짐했었지만 이런 커다란 설렘을 마주하고서 글을 적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20년 넘은 영화의 기대평을 쓰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작업이다.


어린 날, 거대한 화면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곤충왕국을 마주했을 때의 그 경이로움을 기억한다. 나뭇가지에 걸려 밀리지 않는 쇠똥을 굴리려 하는 쇠똥구리, 몸집만한 거대한 빗방울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개미가 훗날의 내 모습이 될 것임을 직감한 것일까. 일견 자연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현실과 무관한 듯 보인다. 그것이 제법 근사한 삶의 은유라 하더라도 그 내용만으로는 북핵, 청년실업, 노인 빈곤률 및 자살률, 일본 헌법 9조 개정, 동북공정, 부동산 대책 등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 대신 마음이 허전하거나 여유를 찾고 싶은 누군가에게 권한다. 그리고 되찾은 영혼의 평정 속에 진실과 해답이 있기를 바란다.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 그리고 작은 우주.  



 

- 벌레가 아주 크게 나오는 영화입니다. 주의하세요!.

- 제대로 된 후기를 작성해 본 일은 아직 없는데 기대평이 더 내게 맞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재밌다. 또 위의 작품들을 포함하여 자연다큐멘터리 연작 후기를 쓰는 것도 고려 중이다. 긴 호흡으로.

<마이크로 코스모스>(누르면 벌레가 나옵니다. 조심하세요!)는 유튜브에 저화질 풀버전 영상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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