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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 마지막 장면 [스포일러] 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마지막 부분이다. 거대한 물결이 거칠게 넘실 거리는 바다로 위태롭게 전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카메라는 담담하게 담아낸다. 어떤 장면전환이나 청각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굉음없이 있는 그대로.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군더더기 없이 생을 보여주는 것. 그 덕에 이 장면은 더욱 아슬아슬하며 잔인하게 느껴진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위기 속에는 여러 인물들의 운명이 달려있다. 첫째로 선량한 아이들의 목숨이다. 깊은 곳에 가서 놀면 안된다는 엄마의 말을 어기긴 했지만 그 댓가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양육권자의 다툼과 이혼을 겪은 아이들이 가족의 행복을 되찾기 위한 여행에서 생을 잃는 이야기는 너무도 잔인한 동화다. 희생자는 .. 더보기
침묵의 봄 Rue St. Vincent in Spring Georges Seurat France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봄이 왔으나 더 이상 들리지 아니하는 새소리에 비통한 마음으로 붓을 든 해양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이 쓴 책 [침묵의 봄] 퇴근 후 시간을 쪼개서 읽었다. 그래서 내용도 조각 조각. 일곱 번 정도 나눠 읽었을까.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다. DDT, DDE, DDD, 세이지 뇌조, 헵타클로르, 벤젠헥사클로라이드(BHC), 합성화학살충제, 염화탄화수소계, 유기인산계. 헬기 또는 비행기로 공중에서 뿌려진 살충제는 땅으로 스며든다. 나뭇잎에 쌓이고 지하수로 흘러 들어간다. 살충제에 노출된 지렁이를 새가 먹으면 죽는다. 호수와 강 바다의 물고기는 폐사한다. 개와 고양이도 쓰러진다. 제거하려.. 더보기
미쓰백 미쓰백감독 이지원 제작 영화사 배 각본 이지원 촬영 강국현 편집 한영규, 허선미 음악 이은주, 모그배급사 리틀빅픽처스 개봉 2018년 10월 11일 시간 98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도 '툭' 잘만 건드리면 인생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기 일쑤다. 각양각색의 내용 만큼이나 말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면서 자기말만 계속 하는 사람도 있고 별거 아닌 소재를 정말 재밌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다. 지루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얘기해서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사람도 있고 너무 고함을 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참고 들으려 애쓴다. 그것이 어떻게든 내뱉으려 하는 상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라고 믿기 때.. 더보기
Gettysburg Address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같이 태어나고 그같은 믿음을 가진 나라들이오래토록 버틸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이 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봉헌 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이곳에서 싸운 죽은,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 더보기
I have a dream The Valley of Creuse at Fresselines Claude Monet 1889 Martin Luther King, Jr.Lincoln Memorial, Washington, D.C.August 28, 1963 I am happy to join with you today in what will go down in history as the greatest demonstration for freedom in the history of our nation. Five score years ago, a great American, in whose symbolic shadow we stand today, signed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This momentous.. 더보기
[문재인 대통령 연설 전문]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 평양 시민 여러분, 북녘의 동포 형제 여러분,평양에서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동포 여러분,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가을.. 더보기
허스토리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잘 기억이 안난다. 주인공 이름, 배우, 이야기가 어떤 흐름이었는지. 기억력 향상에 관련된 학습법들은 대부분 반복과 습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늘 가물가물한 머릿속은 흐르는 대로 살아온 궤적의 탓이려나. 일본군'위안부' 란 단어는 마구잡이로 덧칠한 수채화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여러 기억들의 틈바구니 속에 묻혀 있었다. [아이캔스피크]가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를 희망차게 이야기 했다면 [허스토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과 그 주인공들을 사무치게 재현한다. 위축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힘겹게 토로하는 법정 장면은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위대한 배우들은 기어이 진실을 담아내고야 만다. 표정. 대사. 몸짓으로. 빛 바랜 물감들이 들.. 더보기
상도동 밀스키친 상도동 한 복판, 다소 쌩뚱맞게 위치한 밀스키친. 우연히 들린 이 곳에서 마카롱을 샀다. 맛있다. 특히 치즈 맛. 쫀득 쫀득 하다. 디저트는 자고로 강렬해야 한다. 앞서 먹은 모든 음식을 잊을 만큼. 강한 단 맛에 입 안과 정신이 얼얼해 지면 그 때, 식사는 끝난다. 불을 밝히는 등. 등불. 나중에 먹는 음식. 후식. 차게 해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마카롱은. 장마다. 쁘라삐룬. 비의 신. PRAPIROON. 일기예보는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스스로 길을 찾아 가자. 운과 명은 그저 길일 뿐 그대로 밟아야 하는 율법이 아니다. 흰 벽과 마카롱이 썩 괜찮은 가게는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주택가 한 복판이 어울린다. 오랜 기다림이 긴 편지를 낳 듯 오랜 사유가 깊은 글을 만든다. 나는 맛을 추구.. 더보기